수명 배급 통지서가 302호의 문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것은 새벽 4시였다. 얇고 빳빳한 인화지에는 선명한 붉은색 숫자가 찍혀 있었다. 5,475일. 15년. 진우는 바닥에 떨어진 통지서를 집어 들었다. 손끝에서 종이의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옆방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3년 전 암 정복 이후, 정부는 양자 시뮬레이션 알고리즘을 통해 모든 시민의 생물학적 기대 수명을 산출하고 이를 국가 자원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병은 사라졌지만, 죽음은 이제 순번을 기다리는 공공의 의무가 되었다. 15년. 형의 몫이었다. 진우는 방문을 열고 옆방으로 향했다. 형, 민준은 창가에 앉아 어둠 속에서 식어가는 찻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준의 몫은 진우보다 8년이 적었다. 형은 자신이 받은 통지서를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아둔 상태였다.
“가져가. 내 몫까지 합치면 20년은 살 수 있겠지.”
민준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진우는 형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깨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는 통지서를 구겨 쥐었다. 시스템은 오류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선전했다. 배급 알고리즘은 개인의 유전적 데이터, 생활 습관, 과거 병력을 0.0001초 단위로 분석하여 수명을 할당한다. 하지만 진우는 알고 있었다. 모든 계산에는 시작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작점은 인간이 입력한 데이터였다. 진우는 관제소의 보조 데이터 분석가였다. 그는 매일 밤, 시스템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자잘한 로그를 지우는 일을 했다.
진우는 거실 구석에 있는 구형 터미널을 켰다. 화면이 푸른 빛을 발하며 거실을 채웠다. 그는 형의 고유 식별 번호를 입력했다. 수만 개의 변수가 쏟아져 나왔다. 식단, 수면 패턴, 심박수 변이, 스트레스 지수. 진우는 형의 데이터에서 '스트레스 지수' 항목을 열었다. 3년 전,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직후부터 형의 스트레스 수치는 정상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알고리즘은 이 수치를 '장기적인 생존 부적합 요소'로 분류하여 수명을 깎아내렸다. 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형의 과거 스트레스 로그를 삭제하는 대신, 그것을 '의학적 연구를 위한 자발적 데이터 기증' 항목으로 재분류했다. 알고리즘은 데이터를 삭제하면 오차를 감지하지만, 다른 카테고리로 넘겨버리면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진우의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15년이라는 숫자가 깜빡였다. 그는 형의 기대 수명 산출 공식에 접근했다. 복잡한 수식들이 얽혀 있었다. '생존 확률 가중치'라는 변수 옆에 0.85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것을 1.0으로 수정하면 형의 수명은 자동으로 재계산된다. 진우는 숨을 멈췄다. 시스템의 감시망인 '검증 노드'가 작동하기 전까지 300초의 시간만이 주어졌다. 그는 수정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붉게 점멸했다. [경고: 수치 산출 변수의 비정상적 수정 감지]. 진우는 창밖을 보았다. 도시의 네온사인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수백만 명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몫을 배급받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는 다시 터미널을 붙잡았다. 수정된 데이터를 영구 고정하려면 하위 노드의 승인이 필요했다. 진우는 자신이 가진 관리자 권한을 이용해 하위 노드의 응답을 '수동 승인' 상태로 강제 전환했다.
화면 속의 숫자가 5,475에서 10,950으로 바뀌었다. 30년. 형이 살 수 있는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났다. 진우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순간, 형의 방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민준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진우는 급히 형에게 달려갔다. 형의 호흡은 가늘고 불규칙했다. 배급 시스템은 육체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수명이 늘어났다는 정보가 형의 생체 칩에 전달되기 전에, 육체가 먼저 한계에 도달한 것일까. 진우는 형의 손을 잡았다. 형의 피부가 종이처럼 건조했다.
“왜. . 이런 짓을 했어.”
형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진우는 대답 대신 형의 손을 꽉 쥐었다. 터미널의 경고음이 계속해서 거실을 울리고 있었다. 10,950. 시스템이 이 오차를 수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1시간이었다. 진우는 형을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그는 자신의 통지서를 꺼내 형의 것과 나란히 놓았다. 자신의 몫을 형에게 덧씌우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것은 합법적인 '수명 양도' 절차를 가장한 데이터 조작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한 번 할당된 수명은 회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진우는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자신의 수명을 형의 계정으로 '전송'하는 경로를 만들었다.
화면이 다시 푸른색으로 변했다. [전송 완료. 잔여 수명 0일]. 진우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투명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이것은 환각일 것이다. 하지만 몸의 무게감이 달라졌다. 그는 형의 얼굴을 보았다. 민준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이 업데이트된 생체 정보를 인식하고 회복 신호를 보낸 것이다.
“진우야, 너는. .”
형이 말을 잇지 못했다. 진우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관제소의 연락이 올 시간이었다. 시스템은 오차를 발견하면 즉시 해당 계정을 정지시킨다. 진우는 터미널의 전원을 껐다. 방 안이 완벽한 어둠에 잠겼다. 밖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기계적인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진우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형에게 준 것이 시간인지, 아니면 죽음의 유예인지 알 수 없었다. 시스템은 언제나처럼 정교했고, 인간은 언제나처럼 그 틈새에서 자신의 몫을 훔쳤다. 형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돌아왔다. 진우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점점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1분, 2분.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무거워졌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벼웠다. 그는 의자 팔걸이에 손을 올렸다.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느끼는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의 빛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배급된 여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현관문이 거칠게 뜯겨 나갔다. 관제소의 보안 요원들이 들이닥친 것은 진우가 눈을 감은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기계적인 섬광탄이 거실을 하얗게 불태웠고, 진우는 눈을 뜨지 않은 채 그 강렬한 빛이 망막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요원들의 군화가 바닥을 울리는 소리는 마치 죽음의 카운트다운처럼 정교하고도 차가웠다. 민준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려 애썼지만, 새로 주입된 15년의 수명이 육체에 완전히 동기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경련하는 손으로 진우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데이터 분석가 302호, 관리자 권한 무단 사용 및 시스템 무결성 훼손 혐의로 체포한다.”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요원 하나가 진우의 손목에 차가운 구속구를 채웠다. 구속구와 진우의 피부가 닿자마자 시스템 연동 경고음이 울렸다. 잔여 수명 0일. 시스템은 진우를 이미 '소멸한 객체'로 분류하고 있었다. 죽어야 할 자가 살아있고, 죽어가던 자가 시스템을 기만하여 생명을 연장했다. 이것은 알고리즘의 관점에서 가장 끔찍한 오차이자, 반드시 정정되어야 할 오류였다.
진우는 끌려가면서도 민준을 보았다. 민준의 눈에는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그것은 형제로서의 슬픔인지, 아니면 억지로 연장된 30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혐오인지 알 수 없었다. 진우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오늘 밤, 자신이 저지른 일은 단지 수명을 옮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시스템의 논리 안에 '희생'이라는 단어를 강제로 삽입했다. 계산되지 않는 변수, 즉 사랑이나 헌신 같은 비효율적인 데이터가 시스템의 로그에 기록된 것이다. 비록 그가 곧 사라지더라도, 이 오류는 시스템의 어딘가에 낙인처럼 남아 다음번 수명 배급 때 반드시 흔적을 남길 것이었다.
요원들은 민준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민준의 수명 데이터는 이미 시스템상 '정상'으로 복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민준은 이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그저 배급된 시간을 성실히 소비해야 할 평범한 시민일 뿐이었다. 진우는 끌려가는 복도에서 창밖을 보았다. 먼동이 트고 있었다. 도시의 인공 태양은 어제와 똑같은 밝기로 떠올랐지만, 진우에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풍경이었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멎기 직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가 시스템의 거대한 톱니바퀴 사이에서 낸 불협화음을 떠올렸다. 그것은 쇠가 긁히는 소리 같기도 했고, 누군가 고통 속에서 내뱉는 한숨 같기도 했다.
어두운 이송 차량에 태워지기 직전, 진우는 차가운 금속 벽에 머리를 기댔다. 몸의 무게가 완전히 사라진 듯한 감각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배급받을 시간도, 할당받을 숫자도 없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부를 찌르고 지나갔다. 이것이 마지막 감각이다. 뇌가 보내는 마지막 신호가 시각을 앗아가고, 청각을 앗아가며, 마침내 촉각마저 앗아가기 시작했다. 진우는 마지막 힘을 다해 주먹을 쥐었다 펴보았다. 손바닥에 맺힌 미세한 땀방울이 차가운 공기에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눈을 감고, 형이 살아갈 30년의 시간을 상상했다. 그 시간은 시스템이 준 것이 아니라, 진우가 자신의 생명을 깎아 선물한 온전한 자유였다. 진우는 의식을 놓기 직전, 구속구의 차가운 금속이 자신의 손목을 파고드는 감각에 집중했다. 그것은 지독하게 차가웠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여전히 이 세계의 일부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마지막 온기였다. 그의 손이 서서히 툭, 하고 차량 바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