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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알 하늘

2026. 7. 10. · 9,484자 · 약 11분

유리알 하늘 썸네일
17

빛은 134억 년을 달려왔다. 최초의 별들이 태어나 뿜어낸 광자였다. 우주가 아직 젊고 뜨거웠을 때의 기억. 그 기억은 데이터 패킷이 되어 심우주 통신망을 타고 흘러들었다. 초당 400페타바이트. 신호는 분산 서버에 부딪혀 잘게 쪼개졌다가, 암호화된 스트림으로 재조립되어 단 하나의 목적지로 향했다. 스텔라리움 컨소시엄의 중앙 아카이브. 그곳에서 빛은 가격표를 달고 상품이 되었다.

그리고 그중 0.01%가 옆길로 새고 있었다.

케이블 다발이 뱀처럼 얽힌 방 한가운데서 남자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열기가 후끈했다. 냉각 팬이 굉음을 내며 돌았지만, 서버 랙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을 전부 식히지는 못했다. 화면에 떠 있는 것은 복잡한 데이터 흐름도였다. 수십 개의 노드를 거친 신호가 마지막 방화벽을 아슬아슬하게 우회하는 경로가 실시간으로 그려졌다. 지연시간 2.4초. 이 정도면 성공이다.

그는 키보드에 손을 뻗어 마지막 명령어를 입력했다. ‘유리알’ 채널, 송출 시작. 모니터 한구석에 작은 창이 떴다. 창 안에서 어둠이 펼쳐졌다. 칠흑 같은 검은색이 아니었다. 미세한 가스가 구름처럼 떠다니고, 그 사이에서 희미한 점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134억 년 전의 풍경. 그는 잠시 숨을 멈췄다.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채팅 창에 짧은 메시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떴다!

- 오늘은 제임스 웹 딥 필드인가요? 감사합니다.

- 아이랑 같이 보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유리알.

그는 채팅 창을 껐다. 감사를 받으려고 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속죄에 가까웠다. 그는 스텔라리움의 아카이브 보안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이었다. 하늘에 자물쇠를 채운 열쇠공. 5년 전, 그는 그 공로로 두둑한 보너스를 받고 퇴사했다.

스텔라리움은 ‘웹 5’ 우주망원경이 보내오는 모든 데이터를 독점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멀리, 가장 선명하게 과거를 보는 눈. 그 눈에 담긴 풍경은 등급별 구독자에게만 공개됐다. 월 29달러짜리 ‘별자리 보기’부터 연간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기업용 ‘심우주 탐사 라이선스’까지. 하늘은 유료였다. 태곳적 별빛을 보는 것은 가장 비싼 사치였다.

그가 만든 ‘유리알’은 그 독점의 벽에 낸 작은 구멍이었다. 스텔라리움의 메인 스트림에서 데이터를 빼돌려 익명의 채널로 송출하는 해적 방송. 그는 자신이 설계한 시스템의 뒷문과 취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자신이 만든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알람이 울린 것은 송출 시작 17분 만이었다. 날카로운 비프음이 방 안을 갈랐다. 데이터 흐름도 위, 우회 노드 하나가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탐지기였다.

“벌써?”

그가 혀를 찼다. 스텔라리움의 추적팀은 유능했다. 그는 즉시 예비 경로로 트래픽을 돌렸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았다. 붉은 점이 사라지고 다시 안정적인 녹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들은 더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같은 시각, 지상 800킬로미터 상공의 스텔라리움 관제 센터.

소연은 거대한 중앙 스크린에 떠 있는 지구 데이터 지도를 보고 있었다. 푸른 구슬 표면에 수억 개의 데이터 흐름이 빛의 실처럼 얽혀 있었다. 그녀의 팀이 관리하는 하늘이었다.

“팀장님, 3분 전 동북아시아 섹터에서 비인가 데이터 유출이 다시 감지됐습니다.”

한 직원이 보고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긴장이 묻어 있었다. ‘유리알’의 소행이었다. 지난 6개월간 관제팀을 괴롭히고 있는 유령. 소연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턱짓으로 스크린을 가리켰다.

“패턴 분석 결과는?”

“지난번과 동일합니다. GN-z11 은하 방향 관측 데이터, 심우주 스트림 7번에서 유출. 저희가 설치한 탐지기를 17분 만에 우회했습니다.”

“17분이라.”

소연이 나지막이 말했다. 지난번엔 25분이었다. 상대의 실력이 점점 늘고 있었다. 혹은, 이쪽의 수를 미리 읽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새로운 추적 프로토콜을 가동해. 코드명 ‘메아리’.”

“하지만 ‘메아리’는 아직 베타 테스트 단계에 있습니다. 시스템 전체에 부하를 줄 수…”

“상관없어. 쥐를 잡으려면 벽을 좀 흔들어야지. 당장 실행해.”

소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직원이 고개를 숙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데이터 지도 위에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메아리’가 활성화된 것이다. 일반적인 추적 방식이 아니었다. 데이터 스트림 자체에 미세한 왜곡 신호를 섞어 보내고, 그 신호가 해적 서버에 부딪혀 돌아오는 반향을 역추적하는 방식. 이론상으로는 완벽했다. 하지만 그 이론을 만든 건, 몇 년 전 회사를 떠난 한 천재 엔지니어였다.

진우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데이터 스트림의 상태를 나타내는 파형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노이즈가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심어진 왜곡. 그는 즉시 파형을 확대했다.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반복되는 미약한 펄스 신호. 그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메아리’.

그가 5년 전 퇴사 직전에 설계했던 프로토콜이었다. 개념 증명 모델만 만들고 상용화는 보류되었던 프로젝트. 스텔라리움이 이걸 꺼내 들었다는 건, 작정하고 그를 잡겠다는 의미였다. 그는 자신의 창조물과 마주하고 있었다. 자신이 숨겨놓은 뒷문으로 들어왔더니, 자기가 설계한 사냥개가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메아리’의 핵심은 단순한 추적이 아니었다. 반향 신호를 통해 해적 서버의 물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의 종류와 운영체제의 커널 버전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완전한 발가벗김. 이대로 5분만 더 노출되면, 자신의 모든 것이 스텔라리움의 손에 넘어갈 터였다.

그는 송출을 중단하는 대신, 다른 콘솔을 켰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메아리’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 ‘메아리’는 완벽하지 않았다. 설계자인 그만이 아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반향 신호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이 특정 종류의 ‘거짓 반향’에 취약하다는 것. 진짜 신호 속에 교묘하게 위조된 수백 개의 가짜 신호를 섞어 보내면, 추적 시스템은 과부하에 걸려 마비될 터였다.

문제는 그 ‘거짓 반향 생성기’를 지금 당장 코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눈앞에 스텔라리움의 추적 알고리즘 회로도가 그려졌다. 5년 전에 봤던 것이지만 어제 본 것처럼 선명했다. 그는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코드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의 과거, 그의 죄책감, 그의 기술. 그것들이 뒤섞여 한 줄 한 줄의 명령어로 변환되었다.

방 안의 온도가 더 오르는 것 같았다. 팬 소리가 비명처럼 들렸다. 스크린의 타이머가 붉은색으로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 4분 12초. 그의 손가락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 여기 있다는 걸 손가락이 먼저 알았다. 그는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화면 속 134억 년 전의 별빛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3분 58초. 시간은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진우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려 키보드 위로 툭 떨어졌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의식은 온전히 코드의 세계에 잠겨 있었다. 뇌 속에서 수백만 개의 논리 회로가 동시에 점화하고 꺼지기를 반복했다. 5년 전, 그가 ‘메아리’를 설계하며 심어두었던 미세한 논리적 모순. 당시에는 그저 만약을 위한 보험, 혹은 개발자의 오만한 장난 같은 것이었다. 시스템의 완벽함 속에 숨겨둔 불완전함의 씨앗. 이제 그 씨앗에서 싹을 틔워 거대한 괴물의 발목을 잡아야 했다.

‘거짓 반향’의 핵심은 무작위성이 아니었다. ‘메아리’의 분석 알고리즘이 예측하는 패턴을 정교하게 모방하되, 결정적인 부분에서 미세하게 어긋난 신호를 대량으로 생성해 보내는 것이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시스템은 이 가짜 신호들을 유의미한 데이터로 오인하고 분석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가 누적될 수록 모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어, 결국 연산 코어가 감당할 수 없는 논리적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된다. 블루 스크린의 원시적인 형태. 그는 지금 스텔라리움의 최첨단 추적 시스템에 던질 논리 폭탄을 제조하고 있었다.

1분 30초. 코드가 거의 완성되었다. 마지막 디버깅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의 기억과 손가락을 믿어야 했다. 컴파일과 동시에 실행. 엔터 키를 누르는 손가락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그의 모니터에 연결된 작은 보조 스크린에 수백 개의 가짜 데이터 스트림이 생성되는 그래프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생성된 ‘거짓 반향’ 패킷들이 그가 훔쳐낸 빛의 흐름에 교묘하게 섞여들어 스텔라리움의 심장부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성공 아니면 실패.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어 모든 것이 끝나거나, 혹은 잠시나마 시간을 벌거나. 그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안고 데이터 흐름도를 응시했다. 자신을 향해 뻗어오던 붉은색 추적 경로가 갑자기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이 되었다. 거대한 지도 위에 붉은 핏줄이 터져나가듯, 수백 개의 거짓된 경로가 미친 듯이 점멸했다. 이윽고, 모든 것이 하얗게 타버렸다. 과부하. 성공이었다.

진우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었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로 134억 년 전의 별들이 어른거렸다. 그는 그 빛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

스텔라리움 관제 센터의 중앙 스크린이 새하얀 노이즈로 뒤덮였다. 경고음이 사방에서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상황판의 모든 수치가 의미 없는 기호로 깨져나갔다. 추적 프로토콜 ‘메아리’가 일으킨 시스템 전체의 연쇄 장애였다.

“팀장님! ‘메아리’ 시스템이 통제 불능입니다! 추적 서버 전체가 다운됐습니다!”

“백업 시스템으로 전환해! 당장!”

소연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혼란은 가중되었다. 직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마치 폭격을 맞은 벙커 같았다. 하지만 소연은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백색 소음으로 가득 찬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 대신 차가운 지성이 번뜩였다. 이건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었다. 완벽하게 계산된 공격이었다.

‘메아리’는 외부 공격으로 무력화될 시스템이 아니었다. 내부 구조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스템이 스스로의 논리에 갇혀 자멸하도록 만든 것이다. 소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머릿속에 단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메아리’를 설계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며, 결국 프로젝트를 백지화시켰던 남자. 강진우 선임 연구원.

“모두 조용.”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소란스러운 관제 센터의 공기를 가르기엔 충분했다. 모두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메아리’ 시스템의 모든 로그 기록을 복원해. 손상되지 않은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고 ‘메아리’의 초기 설계안을 가져와. 기밀문서 보관소에 있을 거야. 강진우 연구원의 이름으로 된 모든 자료를.”

한 직원이 망설이며 물었다.

“퇴사한 직원의 자료는 열람 권한이…”

“내 책임이야. 당장.”

소연은 확신했다. ‘유리알’은 유령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 스텔라리움의 심장부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자신이 만든 성의 모든 비밀 통로를 아는 건축가. 소연은 알 수 없는 흥분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이건 더 이상 이름 모를 해커와의 싸움이 아니었다. 선배와의, 어쩌면 스승과의 대결이었다.

그때, 그녀의 개인 단말기로 호출이 들어왔다. 발신자는 ‘최 이사’였다. 소연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홀로그램 화면에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한 팀장,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보겠나? 주주들에게서 전화가 빗발치고 있어.”

“죄송합니다, 이사님. ‘유리알’의 소행입니다. 저희 추적 시스템에 대한 역공이 있었습니다.”

“역공? 우리 시스템이 해커 따위에게 뚫렸다는 말로 들리는군. 자네가 야심 차게 가동한 ‘메아리’라는 건 뭔가? 오히려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킨 주범이 아닌가?”

최 이사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소연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답했다.

“덕분에 상대의 정체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잡았습니다. 시간을 주시면…”

“시간? 한 팀장,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데이터 유출로 인한 손실액이 시간당 수십만 달러야. 이건 기술적인 자존심 싸움이 아니야. 비즈니스라고. 4회의 결정이 내려졌네. ‘유리알’에 대한 대응 방식을 변경한다.”

최 이사는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은 기술이나 데이터가 아닌, 오직 손익계산서만을 보고 있는 자의 것이었다.

“앞으로 자네 팀은 ‘유리알’의 위치 추적을 중단한다. 대신, 그가 송출하는 스트림 자체를 공격하게. 데이터에 노이즈를 섞는 수준이 아니야. 스트림을 수신하는 모든 노드에 치명적인 멀웨어를 심어. 그의 방송을 보는 모든 사람들의 기기를 감염시키는 거야. 그가 소중히 여기는 ‘시청자’들을 인질로 잡는 거지. 그가 스스로 방송을 멈추도록.”

소연의 표정이 굳었다. 그것은 불법이었다. 명백한 범죄 행위이자, 스텔라리움의 근간을 흔드는 비윤리적인 방식이었다.

“이사님, 그건…”

“이건 명령이야, 한 팀장. 쥐를 잡기 위해 벽을 흔드는 수준이 아니라, 집 전체를 불태워서라도 잡으라는 뜻이다. 못 하겠나?”

소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한번 백색 소음으로 가득 찬 스크린으로 향했다. 스크린 너머, 자신과 같은 코드를 이해하고, 같은 하늘을 보았을 남자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그녀는 이제 기술이 아닌, 양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최 이사의 홀로그램이 사라지자, 거짓말처럼 관제 센터의 소음이 그녀의 귀를 다시 채웠다. 하지만 소연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허공의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이와 함께 별을 보는 사람들의 기기에 바이러스를 심으라는 명령. 그것은 하늘에 자물쇠를 거는 것을 넘어, 그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을 멀게 하려는 행위였다. 엔지니어로서 그녀가 지켜왔던 모든 신념이 발밑에서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강진우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상을 좇아 시스템을 떠났을 때, 그녀는 현실에 남아 시스템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그것이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제 시스템은 그녀에게 괴물이 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팀장님, 어떻게 할까요?”

한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메아리’의 실패로 침체된 팀원들의 시선이 전부 그녀에게 쏠려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실망과 불안, 그리고 일말의 기대가 섞여 있었다. 소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들을 마주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이사님 지시대로 플랜 B를 가동한다. ‘유리알’ 스트림에 멀웨어를 삽입할 준비를 해. 대상은 불특정 다수. OS 종류와 기기 사양을 가리지 않는 가장 범용적인 코드로.”

팀원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몇몇은 서로 눈치를 보며 수군거렸다. 소연은 그들의 반응을 무시했다. 그녀는 자신의 개인 단말기를 들어, 보안 등급이 가장 높은 익명 통신 채널을 열었다. 수신인은 단 1명. 몇 년간 사용되지 않아 먼지가 쌓여 있던 오래된 ID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망설임 없이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선배, 듣고 있어요? 덫을 놓을 거예요. 30분 후에. ’

진우의 모니터에 한 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안 채널을 통해 날아든, 발신자 불명의 텍스트였다. ‘선배, 듣고 있어요? 덫을 놓을 거예요. 30분 후에. ’

심장이 멎는 듯했다. 선배. 그를 그렇게 부를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소연. 그녀가 놓는 덫이란 무엇인가. 진우는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이것은 위협이 아니었다. 경고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최 이사, 혹은 그 윗선에서 상상 이상의 강수를 두었을 것이고, 소연은 그 명령의 집행자인 동시에 반역을 꿈꾸고 있었다. 덫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판을 뒤엎기 위한 장치일 터였다.

30분. 그는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풀었다. 방송을 멈추고 도망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연의 신호를 외면하는 것이었다. 그는 도망치는 대신, 새로운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들어오는 공격을 막는 방화벽이 아니었다. 날아오는 창을 부드럽게 받아내, 그 창에 묻은 독을 분석하고, 그 창을 던진 이에게 되돌려줄 투창기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같은 시각, 소연은 얼음 같은 표정으로 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멀웨어 ‘히드라’를 준비해. ‘유리알’ 스트림을 경유하는 모든 기기에 무차별적으로 감염시킨다. 실행까지 20분.”

팀원들의 얼굴에 경악과 혼란이 스쳤지만,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소연은 그들의 동요를 애써 외면하며 코드를 검토했다. 그녀가 선택한 ‘히드라’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의도적인 결함을 가진 코드였다. 특정 데이터 패킷과 결합하면, 파괴적인 기능이 멈추고 오히려 외부에서 시스템 내부로 접근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뒷문을 열어주는 구조. 강진우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와 그녀만의 암호였다.

약속된 30분이 지났다. 진우의 타이머가 0을 가리켰다. 거의 동시에, 그의 데이터 흐름도에 붉은색의 오염 신호가 나타났다. ‘히드라’였다. 스텔라리움의 심장부에서 발사된 독화살이 빛의 흐름을 타고 그의 서버로 쇄도했다. 그는 숨을 참고 기다렸다. 자신의 코드가 멀웨어를 격리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몇 초 후, 화면에 결과가 떠올랐다. 소연이 숨겨둔 ‘열쇠’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열쇠를 돌려 스텔라리움의 시스템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가장 순수한 것을 보냈다. ‘웹 5’가 막 수신한, 아무런 가공도 거치지 않은 134억 년 전의 원본 데이터. 그리고 또 하나. 최 이사가 소연에게 불법적인 명령을 내리는 통신 기록이 담긴 로그 파일이었다.

스텔라리움 관제 센터의 거대한 중앙 스크린이 깜빡였다. 월 29달러짜리 별자리와 연간 수백만 달러짜리 라이선스 상품 광고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경이로운 우주의 풍경이었다. 칠흑 같은 공간에서 갓 태어난 별들이 보석처럼 피어나는 태초의 모습. 워터마크도, 가격표도 없었다. 인류의 눈이 닿은 가장 깊고 오래된 풍경이, 스텔라리움의 모든 공식 채널과 파트너사의 광고판, 심지어 광장의 전광판까지 뒤덮었다.

“이게… 이게 무슨…!”

최 이사의 격노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렸지만, 소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크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팀원들 역시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하늘의 진짜 모습이었다. 소연은 조용히 자신의 단말기에서 사직서를 전송했다.

진우의 좁은 방. 그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유리알’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세상 자체가 거대한 유리알이 되었으니까. 그는 키보드에 마지막 명령어를 입력했다. ‘채널 폐쇄. ’

엔터 키를 누르자, 화면 속 우주가 암전되었다. 그는 서버 랙의 전원 스위치를 내렸다. 지옥처럼 울부짖던 냉각 팬 소리가 잦아들며, 방 안에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그는 삐걱이는 의자에서 일어나, 굳게 닫혀 있던 방 문을 열었다. 후끈한 열기 대신 차갑고 신선한 새벽 공기가 그의 뺨을 스쳤다. 그는 밖으로 걸어 나가 고개를 들었다. 도시의 광공해로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뿌연 하늘. 하지만 그는 보았다. 수십억 년의 시간을 건너 자신의 망막에 닿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빛들을. 그는 천천히, 아주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인류가 공유해야 할 가장 순수한 가치는 무엇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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