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지 안의 작은 몸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가쁜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의 검붉은 혹이 미세하게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공기 순환 장치의 낮은 소음만이 방 안의 유일한 소리였다. 여자는 케이지 옆에 놓인 기록판에 서명했다. 오늘의 체중, 식이량, 특이사항. 어제와 같은 단어들을 기계적으로 써 내려갔다. ‘식이량 감소’. ‘활동성 저하’. ‘종양 크기 12mm 추가 확장’.
기록을 마친 그녀, 수현은 투명한 아크릴 벽에 손을 댔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케이지 안의 흰 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수용체-7. 그것이 이 쥐의 공식 명칭이었다. 수현은 한 번도 그 번호로 쥐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냥 ‘얘’였다.
수현은 주머니에서 작은 사과 조각을 꺼냈다. 규정 위반이었다. 아이가 어제 남긴 것이었다. 잘게 썬 사과 조각을 케이지의 작은 틈으로 밀어 넣었다. 쥐는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아주 잠깐 씰룩였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사과 조각은 톱밥 위에서 서서히 갈색으로 변해갈 터였다.
3주 전, 딸 예나의 몸에 있던 신경아세포종의 마지막 분자들이 이 작은 몸으로 전이되었다. 양자 전이 치료. 의사는 그렇게 불렀다. 예나의 종양 세포와 수용체-7의 배양 세포를 얽힘 상태로 만든 뒤, 예나의 몸에서는 암세포의 활동성을 0으로 수렴시키고, 그 모든 엔트로피를 수용체-7에게 이전시키는 기술. 의사는 완치율이 98%에 달한다고 했다. 딸의 몸에 칼을 대지 않고, 방사선에 그을리지 않고 암을 ‘들어내는’ 기적. 수현은 그 기적에 모든 것을 걸었다.
전이가 이루어지던 날을 기억한다. 예나는 수면 유도제에 깊이 잠들어 있었고, 거대한 전이 챔버의 유리벽 너머로 수용체-7이 담긴 생물학적 격리 용기가 보였다. 모든 과정은 소리 없이 진행됐다. 모니터의 그래프들이 오르내리고, 녹색 불이 들어왔다. 전이가 완료되었다는 신호였다. 간호사가 예나의 상태를 살피는 동안, 수현은 유리벽 너머의 쥐를 보았다. 아주 잠깐, 쥐가 고개를 들어 수현과 눈을 맞췄다. 검고 작은,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눈. 그 눈을 본 순간, 수현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저것은 단순한 실험동물이 아니었다. 딸의 죽음을 대신 짊어지기로 약속된 존재였다.
“어머님, 이제 그만 나오셔야 합니다. 케어실은 하루 30분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수현은 고개를 들었다. 연구원이 문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김선생이었다. 그는 항상 같은 표정, 같은 목소리였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케이지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문이 열리고 소독약 냄새가 훅 끼쳐왔다.
“수용체 상태는 어떤가요?”
김선생이 기록판을 확인하며 물었다.
“잘 안 먹어요. 그리고… 많이 아파 보여요.”
“예상된 과정입니다. 전이된 종양의 진행 속도는 원본보다 평균 1.7배 빠릅니다. 모든 데이터는 정상 범위 내에 있습니다.”
‘정상 범위’. 수현은 그 말이 귀에 박혔다. 빠르게 죽어가는 과정이 정상이라는 뜻이었다. 김선생은 수현의 표정을 읽었는지,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
“예나의 회복 속도는 아주 좋습니다. 다음 주면 무균실에서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이 모두가 수용체-7 덕분이죠.”
수현은 대답 대신 복도를 걸었다. 케어실이 있는 7층과 예나의 병실이 있는 12층은 공기의 질감부터 달랐다. 7층은 동물의 미세한 체취와 톱밥 냄새,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섞여 있었고, 12층은 오직 소독약과 희망의 냄새만이 존재했다.
병실에 들어서자 예나가 침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3주 전만 해도 창백한 얼굴로 숨만 겨우 내쉬던 아이였다. 이제 뺨에 혈색이 돌았다. 수현을 보자 아이가 활짝 웃었다.
“엄마! 나 오늘 죽 다 먹었어.”
“우리 딸, 장하네.”
수현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늘었던 머리카락이 제법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아이의 몸이 회복되는 모든 순간이 기적이었고, 그 기적의 비용이 7층 케이지에서 청구되고 있었다. 예나가 그림을 내밀었다. 커다란 나무 아래 엄마와 예나, 아빠가 서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작고 하얀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얘는 쥐야. 우리 예나 낫게 해주는 착한 쥐.”
아이는 쥐의 머리 위에 노란색으로 왕관을 그려 넣었다. 수현은 그림을 받아 들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걸린 것 같았다.
다음 날, 수현은 다시 7층을 찾았다. 케이지 안의 쥐는 어제보다 상태가 더 나빠 보였다. 옆구리의 혹은 이제 작은 구슬 크기를 넘어 탁구공만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 가늘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제 넣어준 사과 조각은 그대로였다.
수현은 물병의 노즐을 손으로 눌러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쥐의 입가에 물방울을 가져다 대주자, 작은 혀가 나와 힘겹게 물을 핥았다. 몇 번 핥더니 이내 고개를 떨궜다.
“얘, 아파요?”
뒤에 서 있던 김선생에게 수현이 물었다. 그는 언제 왔는지 모르게 그녀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고통 반응은 관찰됩니다. 하지만 수용체의 신경계는 인간과 상이하여 우리가 느끼는 방식의 ‘고통’을 느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진통제 같은 건 없나요? 너무 힘들어 보여요.”
“치료 프로토콜상 허용되지 않습니다. 약물 투여는 얽힘 관계의 안정성에 미세한 노이즈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의 연속성을 위해 외부 개입은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김선생의 대답은 언제나처럼 명료했지만, 수현에게는 그 어떤 문장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데이터의 연속성. 딸의 완벽한 치유를 위해 이 작은 생명체는 온전한 고통을 끝까지 감내해야만 했다. 그것이 이 기적의 전제 조건이었다.
“어머님께서 원하신다면, 절차를 조기에 종료할 수는 있습니다.”
김선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현이 그를 돌아봤다.
“종료라니요?”
“안락사입니다. 수용체의 생명 활동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거나, 종양의 전이 상태가 임계점을 넘었다고 판단될 때 시행하는 표준 절차입니다. 지금 상태라면 내일이나 모레쯤 자동적으로 절차가 진행되겠지만, 보호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예나한테는 아무 영향이 없나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김선생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 짧은 침묵이 수현의 심장을 얼어붙게 했다.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얽힘의 종료는 곧 치료의 종료를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98%의 병소가 성공적으로 이전되었고, 예나의 신체는 거의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아직 예나의 몸에 남아있을지 모를 0.01%의 잠재적 위험까지 모두 소거하려면, 수용체가 자연적으로 생명을 다할 때까지 얽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조기 종료는 수용체의 고통을 덜어주지만, 예나의 재발 가능성을 0%에서 0.01%로 올리는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0.01%는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수치입니다. 대부분의 보호자께서는…”
김선생은 말을 끝맺지 않았다. 수현은 그의 눈을 보았다. 그 눈은 ‘선택은 당신의 몫’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병원은 가장 안전한 길을 제시할 뿐, 그 길 위에서 벌어지는 윤리적 고뇌까지 책임져주지 않았다.
수현은 다시 케이지 안의 쥐를 보았다. 작은 몸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딸의 생명을 구한, 왕관을 쓴 구원자. 그리고 이제는 딸의 완벽한 미래를 위해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 희생양. 그녀는 투명한 벽 너머로, 꺼져가는 작은 숨의 무게를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혹은 그저 제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지, 김선생은 가볍게 고개를 까딱하고는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케어실의 문이 닫히자, 수현은 다시 한번 혼자가 되었다. 케이지 안의 작은 생명과 단둘이. 0.01%라는 숫자가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다.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수치. 그러나 딸의 목숨을 걸고 하는 도박에서 무의미한 숫자란 없었다. 그것은 1만 개의 문 중에 단 하나의 문이 지옥으로 통한다는 의미였고, 수현은 그 문을 두드릴 용기가 없었다.
그녀는 케이지에서 등을 돌렸다.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작은 숨소리가 등 뒤에서 그녀를 붙잡는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12층 버튼을 눌렀다. 숫자가 올라가는 동안, 밀폐된 공간의 공기가 점점 더 무겁게 그녀를 짓눌렀다. 7층의 공기와 12층의 공기. 죽음과 삶. 절망과 희망. 그 사이를 오가는 이 쇠 상자 안에서 그녀는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12층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공기가 바뀌었다. 밝은 조명과 경쾌한 발걸음 소리, 간호사들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병실 문을 열자 남편 민준이 그녀를 맞았다. 그는 막 잠이 든 예나의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수현을 보자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작게 속삭였다.
“다녀왔어? 얼굴이 안 좋아.”
“괜찮아.”
수현은 가방을 내려놓고 예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든 아이의 얼굴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었다.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지옥이라도 기꺼이 다녀올 수 있었다.
“오늘 의사 선생님 다녀갔어. 예나 상태가 아주 좋다고. 다음 주 퇴원 준비해도 될 것 같대.”
민준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서려 있었다. 수현도 희미하게 웃었다. 끔찍했던 지난 몇 달을 생각하면 꿈만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꿈의 대가를 생각하면 웃음이 금세 사라졌다. 그녀는 창밖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아래층에서 김선생을 만났어.”
“그래? 그 쥐는 어떻대?”
민준은 ‘수용체-7’이라는 말을 어색해했다. 그는 언제나 ‘그 쥐’라고 불렀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제3의 존재인 것처럼.
“상태가 많이 안 좋아. 그런데… 절차를 일찍 끝낼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안락사.”
그 말에 민준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잘됐네. 그 녀석도 고통스러울 텐데. 당연히 그렇게 해줘야지.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건데,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편하게 해주는 게 도리 아니겠어?”
그의 말은 선량하고 합리적이었다. 수현이 매일같이 마음속으로 되뇌던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선택의 순간이 닥치자,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예나한테 0.01%의 재발 가능성이 생긴대.”
민준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숫자를 되뇌었다.
“0.01%?”
“응.”
“그게 다야? 99.99%는 안전하다는 거잖아.”
민준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여보, 그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숫자야. 왜 그런 걸로 고민을 해? 당연히 안락사시켜야지. 그깟 미미한 확률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을 며칠이나 더 고통 속에 방치하는 건 너무 잔인하잖아. 우리 예나 살리자고 괴물이 될 필요는 없어.”
그의 단호한 말에 수현은 심장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괴물. 어쩌면 자신은 이미 괴물인지도 몰랐다. 딸의 완벽한 안전을 위해, 작은 생명체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에게 0.01%는 그저 숫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 악몽의 크기였다.
“당신은 몰라. 그 작은 확률 하나가 우리한테 어떤 의미였는지. 예나가 처음 진단받았을 때, 의사가 생존 확률 얘기했던 거 기억 안 나? 희박한 확률에 모든 걸 걸고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 이제 와서… 단 0.01%라도 위험을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아. 나는 못해.”
수현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민준은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안쓰러움과 답답함이 뒤섞인 표정이 스쳤다.
“수현아, 그건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야. 당신 매일 7층에 다녀오면서 그 쥐한테 정이 든 거 알아. 하지만 우리 현실을 봐야지. 우리한테 가장 중요한 건 예나야. 예나의 건강이고, 미래라고. 당신은 지금 예나가 아니라 그 쥐를 보고 있는 거야.”
“아니! 나는 예나를 보고 있어. 예나의 완벽한 미래를 보고 있기 때문에 망설이는 거라고!”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자, 잠들어 있던 예나가 작게 뒤척였다.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방 안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오직 예나의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창밖의 도시 소음만이 들려왔다.
민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수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결정은 당신이 해. 매일 그걸 마주하는 건 당신이니까. 하지만 너무 오래 끌지는 마. 당신도, 그 쥐도, 모두를 위해.”
그는 잠시 예나의 얼굴을 들여다본 뒤,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병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수현은 무너져 내리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남편의 말이 맞았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전이가 이루어지던 날, 유리벽 너머로 마주쳤던 그 검고 작은 눈동자. 딸의 죽음을 오롯이 넘겨받던 그 순간의 무언의 약속. 그 모든 것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잠든 딸의 작은 손을 가만히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전해져 왔다. 이 온기를 지키기 위해, 저 아래 7층에서는 작은 몸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수현은 눈을 감았다. 선택의 무게가 온몸으로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병실 문이 조용히 열리고 민준이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따뜻한 캔커피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그는 말없이 하나를 수현의 손에 쥐여주고는, 다시 예나의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그는 더 이상 안락사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은 수현에게 또 다른 형태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미안해.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지.”
수현이 먼저 침묵을 깼다.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당신 마음을 몰라준 거야. 당신이 매일 뭘 보고 오는지, 어떤 마음인지 헤아리지 못했어. 미안해.”
서로를 향한 사과는 방 안의 무거운 공기를 조금 걷어내는 듯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그날 밤, 수현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남편과 딸이 잠든 것을 확인한 그녀는 유령처럼 병실을 빠져나왔다. 발걸음은 저절로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그녀의 손가락은 망설임 없이 7층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한밤의 7층은 낮보다 더 깊은 어둠과 침묵에 잠겨 있었다. 비상등의 희미한 불빛만이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케어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보자, 케이지들을 비추는 최소한의 조명 아래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듯 보였다. 수현은 차가운 유리에 이마를 기댔다. 바로 그때,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김선생이었다. 그는 흰 가운 대신 편한 옷차림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수현을 발견한 그가 놀란 얼굴로 다가와 문을 열어주었다.
“어머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잠이 안 와서… 그냥….”
수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김선생은 그녀의 얼굴에서 모든 것을 읽어낸 듯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를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잠깐 들어와서 보시겠어요? 마침 경과를 확인하던 중이었습니다.”
케이지 안의 쥐는 이제 거의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가끔, 경련하듯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전부였다. 옆구리의 종양은 피부를 뚫고 나올 듯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표면이 번들거렸다.
“보시는 것처럼, 생명 활동이 곧 임계점 이하로 떨어질 겁니다. 아마 몇 시간 남지 않았어요.”
김선생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화면에는 수많은 그래프와 숫자, 그리고 쥐의 신체 내부를 보여주는 3차원 이미지가 떠 있었다.
“이게 얽힘 상태를 나타내는 데이터 스트림입니다. 두 생명체가 양자 수준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죠.”
복잡한 선 하나가 미세하게 파동치고 있었다. 그는 선의 특정 부분을 확대했다.
“이 파형이 수용체의 고통 인덱스입니다. 보시다시피 한계치를 넘나들고 있죠. 그리고 이쪽이… 예나의 신체 안정성 그래프입니다. 완벽한 수평선을 그리고 있어요. 저 고통이 이 평온을 떠받치고 있는 셈입니다.”
그것은 기적의 원리를 보여주는 잔인한 증거였다. 수현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딸의 완벽한 평온이 저 작은 생명체의 극한의 고통과 실시간으로 맞교환되고 있는 현장. 김선생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맴돌았다.
“제가 여기서 엔터 키를 한 번만 누르면, 모든 게 끝납니다. 얽힘이 강제 종료되고, 수용체는 고통 없이 즉시….”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멈춰 있었다. 그는 수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무감정한 연구원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이 기적의 무게를 아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수현은 대답 대신, 모니터와 케이지를 번갈아 보았다. 화면 속에서, 완벽한 수평선을 그리는 딸의 생명 그래프와 미친 듯이 요동치는 쥐의 고통 그래프가 나란히 흘러가고 있었다. 하나의 고통이 다른 하나의 평온을 낳는, 잔혹한 등가교환의 법칙. 그녀는 이 기적의 본질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히 암세포를 ‘들어내는’ 기술이 아니었다. 하나의 평온이 다른 하나의 경련을 먹고 자라고 있었다.
엔터 키. 저 네모난 플라스틱 조각 하나가 저울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다. 고통의 이전을 멈추고, 얽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다. 그 대가로 0.01%의 불안을 영원히 품고 살아야 할지라도. 어쩌면 남편의 말이 맞았다. 이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전이 챔버의 유리벽 너머로 마주쳤던 그 검고 작은 눈. 딸의 그림 속에서 노란 왕관을 쓰고 있던 ‘착한 쥐’. 그 존재에게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 그녀는 딸의 그림 속 노란 왕관을 떠올렸다.
구원자에게 이런 죽음을 선사할 수는 없었다. 딸의 생명을 위한 희생은 이미 충분했다. 남은 것은 무의미한 고통의 연장일 뿐이었다. 수현은 결심했다. 그녀는 김선생을 지나쳐 키보드로 다가갔다. 놀란 그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수현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조용히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주었다.
수현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케이지 안의 작은 몸을 보았다. ‘얘야, 이제 괜찮아. ’ 마음속으로 작게 속삭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내려가 엔터 키 위에서 멈췄다. 그리고, 눌렀다.
요동치던 붉은 파형이 화면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길고 고요한 녹색 선 하나만 남았다. 케이지 안에서 가냘프게 떨리던 쥐의 미세한 경련이 완전히 멎었다. 작은 몸은 비로소 완전한 부동의 상태가 되었다. 죽음은 경이로울 만큼 빠르고 조용했다. 김선생이 나직하게 말했다.
“얽힘 관계, 종료되었습니다.”
수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어깨를 누르던 무게가 사라지고, 처음으로 숨이 깊게 쉬어졌다. 그녀는 케이지를 향해 가볍게 목례하고는 뒤돌아섰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그녀는 숫자가 바뀌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7층의 공기는 그녀의 폐부에서 완전히 빠져나갔다. 12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익숙한 소독약 냄새와 함께 밝고 따뜻한 공기가 그녀를 맞았다. 엘리베이터의 금속 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더는 낯설지 않았다.
병실 문을 열자 민준이 소파에 웅크려 잠들어 있었고, 예나는 여전히 침대에서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었다. 수현은 조용히 딸의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머리맡 탁자에는 예나가 그린 그림이 놓여 있었다. 커다란 나무, 아빠, 엄마, 그리고 예나. 그 옆에 노란 왕관을 쓴 하얀 쥐가 웃고 있었다.
수현은 그림 속 왕관 쓴 쥐를 가만히 손끝으로 쓸었다. 크레용의 유분이 손가락에 희미하게 묻어났다. 그녀는 잠든 아이의 작고 따뜻한 손을, 두 손으로 가만히 감싸 쥐었다. 자신의 맥박이 아이의 손목에서 희미하게 뛰는 것 같았다. 99.99퍼센트의 온기였다.